‘일요일의 남자’ 변웅전 아나운서 별세,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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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을 깨우던 그 힘찬 목소리, 이제는 추억 속으로

혹시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웃던 기억 있으신가요?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활기찬 목소리로 주말을 책임졌던 ‘명랑운동회’의 진행자, 변웅전 전 의원이 향년 85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에게도, 그리고 아마 많은 분들에게도 그는 단순한 방송인을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오늘은 방송계와 정계 모두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의미를 짚어보려 합니다.

방송의 전설에서 정치의 거물까지, 치열했던 85년

고인은 1960~70년대, 대한민국 방송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입니다. 특히 MBC ‘명랑운동회’는 당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었죠. 진행자로서의 그는 단순히 대본을 읽는 아나운서가 아니었습니다.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쇼맨십’의 원조 격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마이크 앞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방송계를 떠나 정계에 입문한 그는 무려 3선 국회의원(15대, 16대, 18대)을 지내며 정치인으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자민련 대변인 등을 역임하며 ‘입’으로서의 재능을 정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죠.

  • 방송계 업적: MBC 아나운서 실장, ‘명랑운동회’ 등 다수 프로그램 진행하며 ‘국민 MC’로 활약
  • 정치계 업적: 제15·16·18대 국회의원 당선, 자유선진당 대표 역임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의 롤모델이 되다

요즘은 아나운서나 앵커 출신이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를 종종 보지만, 변웅전 전 의원 활동 당시만 해도 방송과 정치의 경계는 꽤 높았습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전달력을 무기로 그 경계를 허물었고, 폴리테이너(Politician + Entertainer)의 1세대 성공 사례로 남았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은 단순히 한 유명인의 죽음을 넘어, 아날로그 방송 시대의 낭만과 격동의 정치사를 함께했던 한 증인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줍니다. 빈소에는 방송계 후배들뿐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을 담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가 남긴 “여러분의 변웅전입니다”라는 힘찬 인사말은 이제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열정과 도전 정신은 방송 역사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유튜브에서 ‘명랑운동회’의 옛 영상을 찾아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도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좌중을 휘어잡으시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고인의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MBC ‘명랑운동회’입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으며, 변웅전 아나운서의 진행 능력 덕분에 국민 예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Q. 정치인으로서의 이력은 어떻게 되나요?
고인은 충남 서산·태안 등을 지역구로 하여 15대, 16대,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3선 의원입니다. 자유선진당 대표와 자민련 대변인 등을 지내며 중진 정치인으로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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