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온 가족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그 활기찬 목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청팀! 백팀!”을 외치며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명랑운동회’의 상징, 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방송인으로서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 이후 정치인으로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그의 삶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분이 놀라셨을 텐데요. 오늘은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MC’이자 3선 의원이었던 고인의 발자취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1세대 ‘국민 MC’, 그가 남긴 유산
지금은 유재석, 강호동 같은 국민 MC가 익숙하지만, 그 원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단연 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를 넘어, 쇼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던 인물입니다. 1960~70년대, 그의 목소리는 곧 일요일의 시작이자 즐거움이었죠.
- MBC ‘명랑운동회’: 그의 이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대표 프로그램입니다.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박진감 넘치는 중계는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견인했습니다.
- 독보적인 톤과 매너: 아나운서 출신다운 정확한 발음과 대중을 휘어잡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그만의 확실한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 방송 역사의 산증인: 아나운서실 실장 등을 역임하며 방송계의 기틀을 다지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방송을 통해 얻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단순히 얼굴만 알려진 스타가 아니라,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친근한 이웃’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향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이크를 내려놓고 여의도로, 3선 의원의 길
방송계를 평정한 그는 정치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인기 영합주의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인은 3선 국회의원(15대, 16대, 18대)을 지내며 꽤 중량감 있는 정치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은 방송 경력만큼이나 치열했습니다.
자유선진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방송인 출신답게 대변인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복잡한 정치 현안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특히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정치 활동을 통해 지역 발전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겠지만, 방송인 출신 정치인이 가질 수 있는 편견을 깨고 3선 중진 의원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별세 소식과 추모의 물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변웅전 전 의원은 지난 23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최근까지도 건강한 모습을 기억하던 이들에게는 더욱 황망한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유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으며, 빈소에는 방송계와 정치계 후배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목이 사라진다는 건, 그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우리의 추억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습니다. 화려했던 스포트라이트 뒤로하고 영면에 든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마무리하며
변웅전 전 아나운서는 갔지만, 그가 남긴 “명랑한” 웃음과 열정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만큼은 옛 방송 영상을 찾아보거나,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부모님과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 고 변웅전 전 의원의 주요 경력은 어떻게 되나요?
A. MBC 아나운서로 데뷔해 ‘명랑운동회’, ‘유쾌한 청백전’ 등을 진행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5대, 16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이자 자유선진당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 Q. 별세 날짜와 향년은 어떻게 되나요?
A. 고인은 2025년 11월 23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노환에 따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