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를 웃게 했던 목소리, 이제는 별이 되다
혹시 일요일 아침이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를 외치던 시절 기억하시나요? 특유의 쩌렁쩌렁하고 맛깔나는 목소리로 주말 아침을 책임졌던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대한민국 방송 역사의 산증인이자, 1세대 ‘아나테이너’의 원조 격인 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오늘(24일) 전해졌습니다. 2025년 11월,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는 뉴스네요.
향년 85세,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다
오늘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변웅전 전 의원은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끝내 영면에 들었습니다.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던 분이었기에 그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는 단순한 방송인을 넘어 정치인으로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긴, 말 그대로 현대사의 풍랑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었습니다. 빈소는 아직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으나, 방송계와 정계의 수많은 후배들이 조문 행렬을 이을 것으로 보입니다.
‘명랑운동회’의 히어로, 방송인 변웅전
요즘 세대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변웅전이라는 이름 석 자는 7080세대에게 ‘주말의 아이콘’과도 같습니다. 그가 남긴 방송 기록들은 지금 봐도 대단한 수준입니다.
- 전설의 프로그램 ‘명랑운동회’: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구수한 입담과 재치 있는 진행은 당시 시청률 보증수표나 다름없었죠.
- 최초의 아나테이너: 딱딱한 뉴스만 전하던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깨고, 예능과 교양을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 MBC 아나운서 실장: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아나운서들의 수장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말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말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방송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유재석이나 강호동 같은 국민 MC들이 있기까지, 변웅전이라는 거목이 닦아놓은 길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죠.
마이크에서 금배지까지, 3선 의원의 길
방송계를 평정한 그는 1990년대 중반, 정계로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보통 인기만 믿고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변 전 의원은 정치인으로서도 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 15대, 16대, 18대 국회의원: 무려 3선 의원을 지내며 중진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자유선진당 대표 역임: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서 대표직까지 오르며 정치적 리더십을 증명했습니다.
- 대변인 출신: 아나운서 출신답게 당 대변인을 맡아 촌철살인의 논평을 내놓기도 했죠.
물론 정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방송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친화력과 소통 능력으로 지역구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대의 목소리’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TV보다 유튜브가 익숙한 세상이고,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는 문화도 사라져가고 있죠. 하지만 변웅전 아나운서가 보여줬던 ‘따뜻한 웃음’과 ‘건강한 에너지’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튜브에서 그의 옛날 진행 영상을 찾아보면, 촌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정겹고 인간미 넘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흑백과 컬러 TV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그 목소리, 이제는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저녁,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신다면 “그때 그 아나운서 기억나세요?”라고 말문을 열어보세요. 잊고 지냈던 따뜻한 추억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 변웅전 아나운서의 대표 프로그램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MBC ‘명랑운동회’입니다. 그 외에도 ‘유쾌한 스튜디오’, ‘묘기 대행진’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 Q.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정당에서 활동했나요?
그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해, 이후 자유선진당에서 당 대표를 역임하는 등 주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보수 정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3선 의원을 지냈습니다.
